내가 수동렌즈를 고집하는 이유

 

난 낡고 손때 묻은 오래된 카메라 렌즈에 매료됐다. 흔치 않을뿐더러 묘한 매력 때문이다. 그 중에는 50년도 더 된 것도 있다. 하나하나씩 모은 게 이제 모든 화각을 갖췄다. 수동렌즈는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애착이 간다. 그래서인지 올드렌즈를 직거래하다보면 가끔은 거래는 뒷전이고 렌즈 얘기가 꽃 피기도 한다.

 

3년 전의 일이다. 애타게 찾던 수동렌즈 중 라이카 M 마운트 렌즈를 때마침 판다는 사람이 있었다. 한 카페에서 만나 거래를 했다. 아끼던 렌즈를 팔기 아쉬웠는지 한참을 얘기 나눴다. 요즘 렌즈라면 중요하지 않은 최소 초점거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였다. 구입하기로 한 렌즈는 최소 초점거리가 25cm 전후인 요즘 렌즈와 달리 75cm가 넘어 고민이었다. 초점거리는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다. 75cm면 카페에 마주앉은 상대를 촬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내 염려를 듣고 상대는 이런 얘기를 해줬다. “최소 초점거리 때문에 피사체를 클로즈업해서 담을 수 없어요. 단점 같겠지만 장점이기도 해요. 피사체와 배경까지 고민해서 한 장 한 장을 찍을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사진 실력이 꽤나 늘더군요.” 그 올드렌즈는 지금도 나와 함께다. 3년을 써온 지금의 내 생각도 그와 같다. 나는 수동렌즈를 고집함으로써 편리함을 잃은 대신 더 큰 사진의 즐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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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를 탓하지 않게 된다

수동렌즈를 쓴다면 기기에 대한 의존이 적어진다. AF 렌즈의 AF 속도, AF 정확성, 노출 정확성 등은 사람의 개입 없이 오직 기기에 의해 결정되므로 카메라나 렌즈와 같은 기기 교체 없이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반면 수동렌즈는 AF 속도도, 정확성도 오로지 숙련도의 몫이다. 즉 노력과 경험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는 얘기다. 쓰면 쓸수록, 노하우가 쌓일수록 초점을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여기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느림의 미학

수동렌즈는 느림의 미학이다. 셔터 한 번이면 채 1초도 되지 않아 초점과 노출까지 자동으로 맞추는 요즘 카메라와 달리 초점링과 조리개링을 조작하는 시간을 사진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AF로는 보지 못했을 다양한 포커싱 변화를 보게 되고, 사진에 대한 더 많은 영감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렌즈의 원리와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함께다

수동렌즈는 어떠한 전자회로도 없기 때문에 대체로 AF 렌즈보다 더 작다. 황동이나 금속 재질로 인한 무게는 단점이나 DSLR 렌즈 1개가 차지할 공간에 수동렌즈 2~3개를 휴대할 수 있다. 초점이 맞은 영역을 알려주는 포커스 피킹을 지원할 뿐 아니라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와 함께라면 휴대성은 더 극대화된다.

 

미러리스 카메라라면 거의 모든 렌즈를 쓸 수 있다

미러리스 카메라를 쓴다면 어댑터만 갖추면 거의 모든 수동렌즈를 쓸 수 있다. 마운트와 촬영면의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미러리스 카메라인 경우 사실상 카메라 마운트라는 제약이 없는 것이다. 라이카, 콘탁스, 롤라이 등 선망의 대상이던 어떠한 렌즈라도 카메라 바디를 교체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매력적인 가격

수동렌즈는 3만 원대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필름시절의 산물인 탓에 크롭(crop) 비율의 요즘 카메라에 최적은 아니지만,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밝은 렌즈가 많다. AF 렌즈 대비 절반 이하의 가격에 비슷한 화각과 밝기의 렌즈를 구할 수 있다.

 

개성이 넘친다

수동렌즈는 개성이 넘친다. 사실적 묘사나 화질만을 추구한 요즘 렌즈와 달리 독특한 결과를 보여주는 렌즈가 많다. 설계나 코팅 기술의 한계인 탓도 있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칼 같이 선명한 묘사력을 보여주는 등 개성 넘치는 렌즈를 골라 쓰는 재미가 있다.

 

클래식한 디자인

수동렌즈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간직하고 있다. 오토매틱 시계처럼 수작업으로 한정 수량만 제작된 것도 있다. 당신의 렌즈가 전 세계에 단 5만여 개만 생산된 것일 수도 있다. 소재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경량화를 위해 플라스틱이나 마그네슘 합금 소재가 쓰인 최신 렌즈와 달리, 수동렌즈는 황동 등의 금속 소재가 쓰여 더 묵직할 뿐 아니라 내구성이 더 뛰어나다. 5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장인정신과 소재 덕분이다.

suhyeoni

suhyeon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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